중동 전쟁 여파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가 헬륨(He) 공급망까지 뒤흔들면서 중국 산업 전반에 충격이 확산되고 있다. CNN 보도에 따르면 반도체와 의료 분야에 필수적인 헬륨 부족이 현실화되며 경제 전반에 파장이 커지고 있다.
불과 몇 달 전 중국 연구진은 자급자족 정책의 약점으로 헬륨 의존도를 지목했다. 당시 이들은 “공급망이 지정학적 변화에 취약하다”고 경고했는데, 이 우려가 실제 상황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헬륨은 반도체 생산 공정의 온도 조절과 의료용 영상 장비 냉각에 필수적인 기체다. 하지만 중국은 전체 공급의 8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해 구조적으로 외부 충격에 취약한 상태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에너지 위기는 이런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일부 분석가들은 중국이 수십 년 만에 최악의 헬륨 공급 충격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공급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반도체 공장 가동 중단과 의료 영상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전자제품과 자동차 등 반도체 의존 산업 전반으로 충격이 확산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카타르의 생산 중단이다. 세계 수요의 3분의 1, 중국 공급의 54%를 차지하는 카타르의 차질로 인해 공급망 정상화에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공급망 전문가들은 현재 시장에서 물량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관계자는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공급 불확실성이 극도로 커졌다고 말했다.
아시아 전반에서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대만은 정부 차원의 비축 필요성이 제기됐고 일본에서는 판매 제한 조치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과 대만 정부 역시 반도체 산업 영향 점검에 나섰다. 서울은 반도체 기업들이 약 4개월치 재고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고, 타이베이는 공급망 다변화와 충분한 재고 확보가 이뤄져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으며 기업의 헬륨 재고 정보도 공개하지 않아 실제 비축 수준을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중국 시장조사업체 서브라임 차이나 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산업용 고순도 헬륨 가격은 지난 한 달 사이 두 배로 올랐다.
해당 업체의 장웨이 애널리스트는 4월 초 보고서에서 “카타르 공급이 단기간 내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내 공급에 대한 불안이 급증했다”며 “상류 판매자들은 물량을 보류하고 있고, 하류 수요자들은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며 일부는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할 의사도 있다”고 분석했다.
석유·가스와 달리 중국은 헬륨을 몇 달치 중앙 비축 형태로 보유하고 있지 않다. 여기에 헬륨을 운송할 수 있는 특수 극저온 탱커 수가 제한적인 점도 공급난을 악화시키고 있다.
중국 전문 컨설팅업체 시놀리틱스의 분석가 바스티안 뒤르는 “현재 많은 탱커가 페르시아만에 묶여 있기 때문에 이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허난성의 헬륨 판매 관리자 리판이는 자사 헬륨 가격이 3월 초 입방미터당 76위안에서 170위안으로 120% 이상 상승했다고 밝혔다. 그는 의료와 반도체 등 다양한 산업 고객들이 현재까지는 가격 인상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격이 오르고 공급이 부족해 기존 고객에게 일부 물량만 보장할 수 있고 신규 주문은 받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분석가들은 공급 부족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의료용 등 우선순위가 높은 분야로 공급을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트리비움 차이나의 코리 콤스는 재고 확보와 재활용 투자 여력이 있는 첨단 반도체 업체보다, 이익률이 낮은 중소 제조업체들이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디지타임스의 부사장 에릭 황은 헬륨이 반도체 생산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주요 기업들은 가격 상승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며,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곳은 비교적 안정적인 공급을 확보할 수 있지만, 풍선이나 소비재 같은 저부가가치 용도부터 먼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미국은 세계 최대 헬륨 공급국이며 카타르와 러시아가 뒤를 잇는다. 중국은 미중 갈등 이후 미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10년 전 28%였던 미국산 헬륨 수입 비중은 지난해 1~8월 기준 2%로 줄었고, 대신 국내 생산을 늘렸다.
러시아로부터의 수입도 확대해 같은 기간 1% 미만에서 약 42%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러시아 공급만으로는 공백을 메우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당 물량이 장기 계약에 묶여 있어 추가 공급 여력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사태는 중국이 자국 내 헬륨 생산 확대와 비축량 증가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도록 압박하고 있으며, 이는 오랜 기간 추진해온 자급자족 정책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타이달웨이브 솔루션의 존슨은 “앞으로 전례 없는 수준의 리스크 분산과 회복력 강화 전략이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중국의 헬륨 생산은 전체 소비의 약 6분의 1 수준에 불과해 단기간 확대는 쉽지 않다. 트리비움 차이나의 콤스는 “중국이 자체 생산을 늘리는 데는 최소 1~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